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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행동

부산일과학고등학교 진로 특강 후 학생들과 질의응답

by Doer Ahn 2014. 4. 9.



2014.04.09. 강의 후 떠나던 중 학생들에게 붙들려서 :-)




부산일과학고등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진로 특강을 실시했다. 정말 똑똑하고 촉촉한 아이들이라 무슨 말을 해도 모두 흡수해버리는 느낌. 비범한(?) 학생들 덕분에 질의응답도 상당히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었는데..그 중 기억나는 문답들을 정리해본다. 시간이 길어져 저녁 식사도 놓쳤고, 열차도 놓칠 뻔(!)했지만 정말 보람차고 의미있었다. 


질문.

'해외로 떠날 때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그것이 잘될지 그렇지 않을지 확신할 수 없었을텐데, 어떤 용기로 전진할 수 있었나요?'

답변. 
'확신은 없었습니다. 헌데,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요? 저는 오히려 확신이 아닌 확률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일 갑자기 지구가 멸망할지 그렇지 않을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 있나요? 없군요. 하지만 우리는, 지극히 적은 확률일지라도, 내일 지구가 멸망할 확률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이 오늘 학교에 나왔다는 건 내일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거라는 가정에 청춘을 베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하죠. 하지만 분명 반대 확률(내일 지구가 멸망함)도 존재합니다. 이건 허황된 생각이 아닙니다(좀 더 작은 스케일로 지진과 쓰나미, 금융 위기 등을 생각해봐도 좋음). 양쪽 가정은 모두 지극히 객관적이고 따라서 합리적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상상해보세요. 내일 지구가 망한다면, 오늘 이 순간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마치 내일이 예측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계획을 세우고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사실 '내일'은 우리의 상상과 가정에 존재할 뿐 아직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내일은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단순합니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생각합니다. 현재에 충실합니다. 몸이 원하는 소리. 마음이 향하는 곳. 그곳이야말로 이 순간 존재해야할 곳입니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확신이나 특별한 용기 같은 건 없었습니다. 오늘을 더 잘살아야겠다는 선명한 집착. 오늘 이 순간 나에게 솔직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당장의 부끄러움과 후회. 그것이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질문.
'애국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구요, 그렇지 않기도 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기초과학을 공부합니다. 국내는 지원 환경이 척박해 이 분야에서 잘해나가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해외에서 공부하고 성장하는 게 좋을까요? 나라를 위해 국내에 남는 게 좋을까요?'

답변.
'저는 나라에 대한 애정은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건 제 주변 사람들입니다. 오랜시간을 함께하고, 부대끼며, 정을 나누다보니 자연발생한 동물적 애착입니다. 이건 이 땅에 태어난 다수의 운명이죠. 자연스럽게 애착을 갖게된 다수의 주변 사람이 이 나라에 살고 있게 된거죠. 지금 이렇게 만나는 여러분을 포함해 전국각지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만남이 기다립니다. 오늘은 부산, 내일은 평창, 모레는 제주도로 향합니다. 저는 제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제 개인의 행복은 이미 넘칠 정도입니다. 이 감정의 바닥에는 국가애가 아닌 인류애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헌데, 우리가 국가의 주권을 잃었던 일제강점기와 이후의 역사를 보세요. 국가의 근간이 흔들렸을 때 구성원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국가라는 것이 영토를 경계로 둔 이기적 집단이라는 생각을 지울수는 없지만, 저는 제 주변 사람들이 집단적이고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이기적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잘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 갈등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교육이 엉망이니까요. 절망적인 사실 한가지 알려드릴까요? 공동육아에 참여하는 부모 상당수의 직업이 '학교 교사'라고 합니다. 울고 싶습니다. 그럼, 저는 왜? 핀란드나 독일로 이민을 가지 않는걸까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강연을 통해, 변화의 불씨를 나누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나누다보면 어느 순간 빅뱅이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그 가능성에 도전하는 오늘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그리고 질문자 개인에 대한 조언입니다.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연구 환경은 냇물 수준인 것 같습니다. 헌데, 질문자는 분명 고래같은 인물이겠죠. 고래는 냇물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바다에서 공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바다에서 가능성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부탁합니다. 대양에서 튼튼한 고래가 되신 후, 반드시 한국을 기억하고 돌아봐해주세요. 본인이 살던 대양의 물을 한국으로 떠옮겨 올 수 있을 정도로 큰 사람이 되어주세요. 부탁합니다.


질문.
'오늘 이 강의를 위해 정말 깊이 생각하고, 많은 준비를 하신 것 같습니다. 깊이 생각하는 노하우가 있으세요?'

답변.
'의도적으로 멍 때리세요. 침묵을 배우세요. 동네를 산책하세요. 침묵은 창의력의 근원이 됩니다. 바쁘게 보고 듣고 말하고 쓰고 외우고 성과를 내야하는 우리의 일상에서 침묵과 명상은 시간낭비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절대 낭비가 아닙니다. 수 많은 위인들이 고독의 터널에서 창의력을 개발해왔습니다. 

침묵과 명상은 대뇌피질이 아닌 해마를 마사지해주는 적극적인 뇌운동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고민하다 잠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문제가 풀려 '만세'를 외친 경험이 있을겁니다. 의식이 쉬는동안, 무의식은 논리적 직관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봅니다. 

이러한 믿음은 자연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강화될 수 있습니다. 물리학을 공부해보세요. 물리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학문입니다. 특히, 양자역학을 공부해보면 논리와 이성만으로는 도저히 믿기 힘든 수 많은 현상을 접하게 됩니다. 세상은 논리적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직관적 논리를 넘어선 뜻밖의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의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의도적으로 멍 때리고, 잠을 즐기세요. 동네를 산책하고, 침묵을 배우세요. 







깊이있게 놀자.

대담하게 하자.

 자기답게 살자. 

 우리는 보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세상을 디자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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