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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행동

독서 거부..그러다 항복.

by Doer Ahn 2012. 3. 5.




고등학교 때, 내 학업의 가장 큰 고민 사항 중 하나는 '언어 영역' 성적이었다. 그 시절 나는 교과서 이외의 책을 긴 호흡으로 완독한 일이 거의 전무했다. 항상 수업 시간에 뒷자리에 앉아 무협지를 읽어대는 친구들이 언어 영역 모의고사 성적을 나보다 잘 받으면 난 은근한 속으로 그들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들을 좇아 무협 세계로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돈도 시간도 없었다. 아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다양한 과목의 교과서를 무한 반복 암기하면서 높은 내신 성적과 우등생의 품행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교과서 외에 독서를 하지 않는 습관은 관성으로 이어져 대학 입학 후에도 계속되었다.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는 건, 뭔가 불편했다. 나는 재래시장을 걸으며 아지매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일에 더 큰 쾌감을 느꼈다. 산나물을 다듬는 할머니의 손등에 잡힌 주름이 책에 쓰인 어떤 글귀보다 더 현명해 보였고, 한잔 술이 한권 책보다 더 깊어보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책은 지식을 주지만, 사람은 지혜를 준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격언에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아는만큼 편견에 사로잡힌다'는 논리로. 즉, 책을 읽어서 아는 게 많아질수록 오히려 싱싱한 창의력으로부터는 멀어진다는 이성으로 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 친구들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방문 예정 지역의 역사와 주요 사적들을 꼼꼼하게 공부하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전 암기 학습 과정보다 직접 내 몸과 피부로 느끼는 현재의 사실에 입각해서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는 게 우월하다고 믿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말했다. 

"오랜 세월 우리는 선생들에 의해, 권위자들에 의해, 책과 성인들에 의해 마치 숟가락으로 떠먹여지듯 양육되었다. 우리 안에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독창적이고도 원래 모습 그대로인,  그리고 명징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한동안 다독을 거부해왔었다. 정말 읽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책들은 끝내 항복을 선언하고 읽기는 했지만, 그 독서들이 나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단말마의 독서 후엔 포만감이 아닌 공허함이 남았다. 진지한 깨달음보다는 아는 척이 많아져 오히려 후회가 밀려왔던 적도 많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문득 내 삶에 휘둥겨 감겨왔다. 이는 쌩뚱맞게도 친구 송원이가 올해 백두대간 종주를 함께하자고 제안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송원이의 제안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른 친구에게 송원이의 말을 옮기던 중, 백두대간이란 말이 떠오르지 않는 바람에 '송원이가 태백산맥 가자던데?'하는 식으로 말을 해버렸던 것이다. 모두 웃고 넘겼다. 그러나 그 날, 괴이하게도 말 실패의 잔변감을 다른 방법으로 처리할 길이 없어 그대로 태백산맥 전권을 구매했다. 기왕 샀으니, 읽기 시작했다. 읽다보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읽었다. 그러다 날이 밝았다. 그래도 더 읽었다. 책이 손으로 녹아들어 몸 속 깊이 동화되는 듯했다. 가슴이 찡해지고, 눈물이 나고, 분하고, 억울하고, 한스러웠다. 나는 그곳에서 살아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났다. 그 심연의 세계에는 '한()'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문학은 곧 내게 감옥이 되었다. 내친 김에 '한강', '아리랑', '로마인 이야기', '토지', '도쿠가와 이에야스', '료마가 간다', '삼국지', '수호지', '사기열전', '중국의 붉은별' 등 고전들을 구비했다. 그리고 그들을 차례로 다시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고전 속에서 나는 반복되는 인간사의 허망함과 진실을 목격했고, 지금 내 삶을 보다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얻게 되었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통해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한국의 근대사는 그저 한스러울 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 로마인 이야기라는 망원경으로 바라본 기원전 로마에서, 우리 근대사와 유사한 혼미의 사태를 발견하고는 희망을 외쳤다. 누가 사태를 수습했을까? 정신없이 읽어내리다 만난 건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인물이었다. 유사하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으로 유명한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혼미한 역사를 통합하고, 현실에서 비전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러다 다시 굽이쳐, 수호지와 중국의 붉은별을 통해서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우리 삶의 실체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과거에 현재가 있다. 더 깊이 읽을수록 더 새로워지고, 충격으로 멍해질 때가 많다. 혼자만의 직관과 관찰력에 기대어서는 미처 느낄 수 없었던 역사의 환희와 상실. 그리고 설레임.

이제 나는 고집스럽게 멀리하던 독서의 세계에 항복을 선언한다. "책은 지식을 주지만, 사람은 지혜를 준다"는 나의 기본 견지나 '아는만큼 편견에 사로잡힌다'는 주장은 협동적 타협을 통해 새로움으로 발돋움할 때가 왔다. 양서를 탐닉하고, 더 성장해야겠다.   


깊이있게 놀자.
대담하게 하자.
자기답게 살자.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것들을 자연스럽게 디자인합니다. 

Dream Challenge Group

Doer 안영일(http://www.twitter.com/doer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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