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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행동

[선물] 내게 꿈과 영어를 준 사람 - 우찬래

by Doer Ahn 2009. 7. 31.



고등학교 시절.

나는 철제 가건물 독방에 거주했다.
 
여름에는 폭염에 뇌가 타는 듯하여 혼미했고,

겨울에는 한파에 뼈가 찢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축구 한 게임 후 등목만 하면,

산들산들 원두막에서 수박 한 조각 먹는 것보다 더 행복했고,


전기 장판을 켜 두어도 오히려 차가워져만가던 방 바닥의 기운도,

친구들과 함께 뒹굴뒹굴 이불 빼앗다가 지쳐 잠들다보면,

지금에 와서는 그게 다 추억이다.


그 시절.

나는 우찬래라는,

현재 내 집의 침대에서 함께 뒹굴고 있는 동거남으로부터,

두 가지를 선물 받았다.


하나는 꿈을 꾸는 능력.

다른 하나는 나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 계기. 외국어.


그는 가끔 뜬금없이 가건물의 샷시문을 드르륵 밀어 올리고 들어와서는,

자기의 꿈을 이야기하고는 했다.

건축에 대해서.

고딕양식을 예로 들면서, 우찬래 건축 양식을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뇌가 타들어간채 이놈의 말이 말인지 방귀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듣고, 들었다.

하지만 역시,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는 친구의 그런 모습이 무척 부러웠나보다.

대학에 들어가서, 나는 그 친구와 똑같은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집은 우리 집에 비해서 꽤 형편이 좋은 편이었다.

그의 집에는 주기적으로 코쟁이 선생님들이 방문해 영어를 가르쳤다.

그 시절 그는 나의 형편과 재능을 안타까이 여겨,
 
미국에서 아기들이 공부한다는 책과 테이프를 선물해 주었다.

그건, 알파벳 A의 발음과 유관 단어부터 가르치는 책이었다.

나는 이를 매우 감사히 여겨, 정말 열심히 반복해서 읽고, 듣고, 읽고, 듣고, 읽고, 들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A와 Apple을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었던 최초의 순간이었다.

나는 밤새 테잎의 선이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반복해서 듣고, 읽고, 듣고, 읽고, 듣고, 읽었다. 

나는 그렇게 시나브로 f, v, th, sh, ch, r, l 등 고난도의 발음을 익혔다.

결과는 고 3때 나타났다.

영어 선생님이 맨 앞 자리에 뒤통수 땜통난 녀석부터 차례로 일어나 책을 읽도록 시켰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평시대로 읽었다.

영어 선생님 왈, '자네는 뭔가 특별한 교육을 받았나?'

나, '아니요'

영어 선생님 왈, '정말?'

나, '네'

영어 선생님 왈, '자네는 부모님께 매우 감사해야 하네.'

나, '네'


........


지금 생각해보니,

재능을 준 것은 부모님이겠지만,

부모님도 신으로부터 하사 받으신 선물이지만,

그 재능을 일깨워 준 것은 나의 친구가 아니었는가 싶다.


꿈과 영어.

그 둘은 지금 내 가족의 밥솥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친구가 밥 먹여주나.

확실히 먹여준다.


by Doer Y.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