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er 남들이 부러워하는 1등보다는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1등이 되자!
내면 2011/05/10 16:36 |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나의 진정한 경쟁자는 교내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경쟁자는 과학고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내 성적이 학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기 때문이란다. 선생님의 말씀에 잠시간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친구들과 경쟁하기는 싫거든!!’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등을 차지하려는 2등과 3등의 불타는 마음은 친구들에 대한 나의 믿음을 처참하게 연소시켰다. 나아가,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야생처럼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친구가 되기 힘들었고,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이상하게도 친구처럼 잘 지냈다. 무엇이 우리 관계를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다음 국어 시간까지 기미독립선언서 두 페이지를 외워오라고 지시했다. 나와 천재로 불리던 잠꾸러기 부반장에게만. 못 마땅했다. 그래서 외우지 않았다. 다음 국어 시간이 왔을 때, 난 선생님이 그걸 기억 못하시기를 바랬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일으켜 세워 암송을 지시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나는 두 세 문장도 채 제대로 암송하지 못하고 어버벅거리고 말았다. 그가 재촉했다. “다시!” 나는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암송하고는 멈췄다. 몸에서 기운이 추욱 빠지는 듯했다. 그러자 그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시!!” 그러나 나는 또 다시 같은 반복을 하고는 멈추고 말았다. 그러자 그가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안 외웠나?” 심장 속에서 ‘외우기 싫었어요’라는 말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고, “외우기 불가능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짧게 말했다. “나와!” 나는 앞으로 나가서 의례적으로 종아리를 걷어 올렸다. 그는 나를 앞에 세워 놓은 채 부반장에게 암송을 지시했다. 그러자 잠꾸러기 부반장 녀석은 꿈에서 조선시대를 갔다 왔는지, 두 페이지를 쉼표 하나 틀리지 않고 몽땅 암송했다.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부반장이 암송을 마치자, 선생님은 몽둥이를 왼손으로 잡았다. 그는 검도를 3단까지 수련한 달인이라 진심으로 화가 나면 왼손으로 몽둥이를 잡는다는 전설이 있었다. 당시 그 광경을 처음 본 학급 학생들 모두가 떨었음이 분명하다. 그 시절엔 왜 스마트폰이 없었을까? 내 마음 속의 비나이다 비나이다 간절한 소망과는 별개로, 강력한 체벌은 시작되었다. 종아리 위에 라면을 끓여도 괜찮을 정도로 열이 나는 듯했다. 이마에는 고통의 땀방울이 피처럼 맺혔다. 체벌을 지속하면서 그가 내게 물었다. “왜 안 외웠다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딱히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대답했다. “외우기 불가능했어요!” 그러자 그의 매질은 더욱 거세어졌다. 이에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고 오기가 생긴 나는 이를 악 깨물고 거친 숨만 내쉴 뿐, 조금도 잘못했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러던 중 불연 듯 부반장 녀석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녀석은 학교 수업시간이나 자습시간에 줄곧 잠만 자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 그 사건 이후, 암기과목에 흥미를 잃은 나의 학교 성적은 1등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등을 바라보는 2등의 불타는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외우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외우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1등을 하지 않는 게 나았다. 그래서 나는 학교 성적으로 1등을 하겠다는 갈망을 내려놓기로 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나에게 굉장히 많은 여유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그 당시, 그것은 내 인생을 약간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결정으로 인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나에겐 이성친구가 생겼다. 나는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너무 행복했다. 비록 그게 학교 성적 1등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일지라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엑스타시라는 클럽을 결성하고 밴드에 준하는 클럽 활동을 했다. 온 몸을 토해내는 듯 노래하고, 그것으로 인정받는 게 즐거웠다. 비록 그게 학교 성적 1등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일지라도.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밤새도록 친구들과 술 마시기를 즐겼다. 나는 술 마시며 친구가 되고, 공감 속에 하나가 되는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비록 그게 학교 성적 1등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일지라도.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스스로가 인간적으로 좀 모자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얻어 맞는 게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게 학교 성적 1등인 친구들이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일지라도.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다니던 학교보다 타 지역 다른 학교 수업을 원정 다니며 듣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집중했다. 내 가슴을 쥐어짜는 강렬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게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길이었을지라도.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유명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며, 안정적이기도 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버리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직장을 선택했다. 그게 편안한 삶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멋진 삶 일거라고 판단했다.
남들이 모두 지향하는 1등. 누구나 부러워하는 출세. 일반인들이 모두 열망하는 길에서 떠난 삶을 살기 시작한지 약 10여 년.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20대, 그리고 가장 행복한 20대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1등이 아닌,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1등.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일, 그리고 가급적이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사는 것.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과감하게 내려 놓고 사는 이 삶의 방식은 나를 무한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어른이 진지하게 놀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직업이 된다. 나의 직종은, 아니 나의 놀이는, ‘철학적 디자이너’다. 이는 원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직종이지만, 내가 만들었으니 이제는 존재한다고 봐야 마땅할 것 같다. 이 직종의 역할은 세 가지. 깊이있게 놀자. 대담하게 하자. 자기답게 살자. 나는 이 모든 것이 너무 즐거워서 미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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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8ink(http://www.8ink.org)의 청소년직업소개잡지 우주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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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なたの人生は私にとって、お手本です。
あなたの生き方は、とても素晴らしいと思います。
兄!!
また、会いましょう。
켄짱!
고마워! 사랑한다! :-)
캬... 답글을 안 달 수가 없구나. 너의 깊이는 스스로 아직 알 수 없으며, 자신을 이미 넘어서고 있는 듯 하구나. 생각한 자와 실행한 자의 차이점이 10년만에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이래서 좋아.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깊은 지도와 편달 부탁드립니다!!
역시 멋있는 brother~!!
오~ 쿨~ 시스터 :-)
그 방망이는 사랑의방망이 요즘같으면나라가시끄럽겠지만 사랑에메는부지런히...
ㅎㅎ 사랑의 방망이면 당연히 부지런히 맞죠 :-)
헌데 많은 경우에, 사랑의 방망이를 맞아도 그게 사랑의 방망이인지 모르거나, 사랑의 방망이로 위장한 화풀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아직 학교나 사회 시스템에서 뭐가 똥인지 된장인지 필터링을 못해주고 있죠.
브라보 마 빅 브로^^
Very Very Bravado! >.<
저는 잘 있어요~
브라더 벌써 보고싶네요!!
인터넷을 사무소에서만 쓸 수 있는데 사무소에 앉아있지 않고 계속 교육이 있고 밖에서 일보고 해서 대화할 시간이 길지 않네요~ 주말엔 꼭 인터넷 달거에요:)
오~ 사랑하는 나의 시스터 :-)
어서 어서 인터넷 달면 좋겠다~ :-)!!!
난 아직 일하고 있지요~ ^^
비밀댓글입니다
네^^ 제가 주로 찾아 들은 수업들은 역사, 철학, 심리학 또는 사회학과, 신문방송학과의 전공 수업들이었습니다. 탄자니아에서 이렇게 댓글이 날아 오다니! 너무 놀랍네요! 거긴 많이 덥죠? :-) 감사합니다!
비밀댓글입니다
^^ 막상 행동을 결심하고 발을 뗀 후에는 어려운 게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발이 움직인 후에는 그저 흐름에 모든 걸 맡길 뿐...헌데, 보통 첫 발 떼기를 너무 힘들어하죠 :-) 쌀쌀한 아침 저녁 감기 조심하세요~!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