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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행동

삶의 절반에 대하여.

by Doer Ahn 2012. 12. 7.




어제 밤새 일하고 아침에 한시간 눈을 붙힌 뒤, 이제 전북으로 출장을 떠납니다. 밤 공기는 맑습니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모두 알죠. 새벽의 창작 활동과 그 즐거움.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죠. 하지만 어제 새벽은 냉장고처럼 추웠습니다. 난방을 넣지 않은 거실. 밤 공기를 퉁기는 듯 홀로 기술을 연마하는 희열에도 불구하고 시나브로 손가락 마디마디를 에워오는 찬 새벽 공기는 사뭇 서럽습니다. 정신은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창작에 희열했다가 오한에 외롭기를 몇번 반복하며 새벽을 태웁니다. 


다섯시 반 즈음이었을까요. 삐그르륵..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꼬꼬이길 바랬습니다. 외로웠으니까, 반사적으로 반가운 사람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몸이 피곤한 관계로 사실은 투정을 부리고 싶습니다. 잠시의 기다림 후. 소리의 주인공은 고양이 타이였습니다. 그녀는 한차례 기지개를 켜고 낼름낼름 배를 핥더니 곧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졌습니다. 속으로 실망하며 탄식했습니다. 이런 쓰~부엉. 이젠 작업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 해가 뜨고 나면 더 이상 기운차게 일할 자신이 없습니다. 밤새 불태운 체력은 이제 재가 되었습니다.


여섯 시가 지나갑니다. 부스럭부스럭.. 드디어 안방에서 꼬꼬가 뛰어 나옵니다. '짜기~ 좋은 아침이야~' 외치며 사탕보다 사랑스럽게 뛰어 나옵니다. 반갑고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투정을 부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웃으며 또 한편으로 묵묵했습니다. 꼬꼬가 늘상 건내던 위로의 말을 어김없이 건내옵니다. '아이고~ 우리 짜기가 이렇게 혼자 또 고생하네~' 하지만 이 위로는 너무 자주 듣는 위로라 사실 효력이 없습니다. 저는 무뚝뚝하게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으니까 하는거지.' 실컷 한 밤의 고독을 즐겨 놓고는 딴소리를 합니다. 그리곤 밤 사이 해낸 작업과 성과를 꼬꼬에게 자랑합니다. 꼬꼬가 한편으로는 시무룩한 듯 또 한편으로는 진지한 듯 듣습니다. 야간에 마무리한 작품은 넉 점. 그 중 석 점은 거의 마무리된 상태에서 다듬질만 한 것이고 하나는 완전히 백지에서 스스로 그려낸 것입니다. 당연히 바닥부터 그려낸 하나가 최고의 뽐냄꺼리겠죠. 하지만 꼬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나 봅니다. 꼬꼬의 기색을 본 후 저도 마음이 변했습니다. 새벽 내내 그리도 애정을 쏟아 부었던 작품. 도전이고, 열정이고, 자존심이었는데. 지금보니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꼬꼬가 애써 다정한 듯 말합니다. '짜기는 이제 잠시 눈 좀 붙혀. 이제 나는 쌩쌩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게.' 나는 그러라하고 침대에 몸을 던졌습니다. '꼬꼬~ 한시간 뒤에 깨워줘야해~'


한시간 후. 일곱시 반. '짜기야~ 일어나~' 사랑스러운 꼬꼬의 목소리. 피로를 털어내며 거실로 나갔더니, 짜잔~ 꼬꼬가 아침밥을 차려 놨습니다. 닭도리탕, 미역국, 깍두기, 배추김치, 현미밥.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만난 기분으로 정말 맛있게 밥을 먹었습니다. 현미밥이 어찌 그리도 꼬실꼬실한지! 무공해 청정 사육 닭고기는 어찌 그리 쪼들쪼들한지!! 꼬꼬네 닭도리탕에 들어간 묵은지는 둘이 먹다 둘다 죽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만세를 부르며 샤워하러 갔습니다. 이젠 서둘러 용산에서 전주로 이동해야 하거든요. 꼬꼬도 쿨하게, '짜기! 짜기는 바쁘니까 여긴 내가 정리할게!'합니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꼬마 신부입니까. 


따뜻한 욕실. 온수는 정말 따뜻합니다. 극락지경. 샤워를 하고 있으니 왠지 나가기가 싫어집니다. 쉬고 싶은 기분이 천근만근. 저는 다시 먼 길 홀로 떠나는 생각에 외로움에 휩싸입니다. 지난 밤 익숙하던 새벽 비린내가 기억처럼 코 끝을 스칩니다. 그러나. 그러나 또 힘차게 세상으로 나가서 한바탕해야죠. 나도 즐겁고, 너도 즐겁고, 우리도 즐거운 의미있는 일이니까요. 


출장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갑니다. 꼬꼬가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뽀뽀해주고 싶습니다. 몇 마디 말과 뽀뽀를 나눈 후, 저는 새벽의 창작물을 다시 꼬꼬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스스로 해낸 일에 아직도 취해. 자료를 본 꼬꼬가 말합니다. '짜기. 난 솔직히 이게 뭔지 잘 모르겠어.' 아..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어제 밤엔 심혈을 쏟아 제작했지만, 오늘 아침에 보니 이게 형편 없어 보인다는 걸 압니다. 꼬꼬가 더 깊이 들어옵니다. '이건 왜 이렇게 했어? 이건? 그럼 이유가 없단 말이네?' 지난 밤 창작의 결과물은 저를 죽이고 꼬꼬를 펄펄 살려 놨습니다. 아아..하지만 저는 아침밥 해주던 사랑스러운 꼬꼬에게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런 지적을 하던 꼬꼬가 말합니다. 


'짜기가 기분이 좋은 거 같아서 나중에 얘기할랬는데 지금 얘기할게. 난 아까 아침에 짜기가 그렇게 얘기해서 속상했어. 지난 번에도 혼자 일이 너무 많아서 외롭다는 둥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을 안 지니 본인이 책임을 져야해서 일을 잡고 있다는 둥해서 나는 반성하고 그 이후로 이일 저일 안 가리고 열심히해 왔는데. 어제 밤에도 나는 밤에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을 못하니까. 그리고 짜기가 먼저 자러 가라고해서 자러 갔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쌩쌩하게 시작하면 되는데. 짜기가 그렇게 얘기하니, 서운했어. 짜기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DCG의 대표이기도 한데, 직원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그런 말을 자주하는 사람이 좋은 대표일 수 있겠어?'


댕~~~~~~ 한 순간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고, 긴 종의 울림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공명을 울리는 종소리. 사방에 역설적 고요와 평화가 찾아오는 소리. 깨달음. 밤은 저를 감상적으로 만들어 고집스럽고 주관 강한 꼬맹이로 둔갑시켰지만 꼬꼬는 저를 현실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녀를 거울로 삼음으로써 저의 좌표를 새삼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꼬꼬가 이어서 말했습니다.'이건 내가 수정해볼테니까 짜기는 기차에서 코~ 자.' 아..기차에서 자료 수정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지원군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동 중에 작업을 지속했다면 밤새 고집했던 작업 방향의 관성에 맞서 싸울 수 있었을 것인가. 아마 뒤집어 엎을 자신이 없어 현상 유지의 땜질만을 생각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가 죽었을 때, 펄펄 살아난 이 사람이 저를 대신해서. 우리를 위해서. 저의 관성을 뒤집어 엎어 주겠다고 나섭니다. 깨달음과 함께 묘한 쾌감이 찾아옵니다. 팀이란 이런 거구나.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기차에서 두 시간째 글을 적고 있습니다.


나오는 길에 꼬꼬의 귀에 나지막하게 속삭인 말.

'우리 꼬꼬는 너무 현명해.'


후회됩니다.

'우리 꼬꼬 너무 사랑해'가 더 좋은 말이었을텐데.


오늘 밤에는 사랑한다 말해야지.



깊이있게 놀자.

대담하게 하자.

 자기답게 살자. 

 우리는 보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세상을 디자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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