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일본 호리에 사장의 몰락으로 보는 기업가정신의 중요성
스크랩 2009/06/12 15:08 |
예견되었던 日 벤처영웅 호리에의 몰락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라이브도어닷컴 호리에 사장
변희재 기자
라이브도어닷컴 호리에 사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체포되었다. 일본은 그를 자민당 후보로 내세운 고이즈미 총리 등을 비롯하여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호리에야말로 노쇄한 일본 경제를 구해줄 새로운 젊은피라 각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예고되어있었다. 일본보다 더 빨리 성장한 한국의 벤처기업의 경우 2000년 거품이 빠지며 수많은 벤처기업가들이 크고 작은 죄로 처벌받았다. 호리에는 이 중 벤처거품을 주도했던 (주)골드뱅크의 김진호 사장을 자신의 발전모델로 삼았다.
과연 호리에는 자신의 스승인 김진호 사장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것인가?
1년 전 일본 주간현대에 기고한 <호리에는 성공할 수 없다>라는 글을 소개한다.
호리에의 인터넷은 무엇인가?
요즘 한국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 파문으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연일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검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아시다시피 ‘후쇼사’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후소샤는 후지산케이 그룹에 속한다.
최근 일본방송의 주식 취득을 통해 후지산케이 그룹 전체를 인수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호리에 타카후미 씨. 그의 말 중에 ‘돈도 안 되는 그런 일은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한국인으로서는 가슴이 후련해지고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은 말이다. 호리에 씨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이런 계기로 시작되었다.
호리에 씨의 저서나 신문과 잡지 등에 인터뷰한 내용은 읽으면 읽을수록 “과연 박수를 보내주어도 될 사람인지”라는 의문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의 저서는 온통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말 투성이다.
그의 저서에 의하면 1996년 ‘라이브도어’의 옛이름인 ‘온더엣지’의 설립 자본금은 600만엥이었다고 한다. 당시 23살의 대학생이 어떻게 600만엥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그는 “600만엔이라는 돈이 큰돈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보면 분명히 빌려줄 사람이 있다. (중략) 부모 형제에게 부탁하면 된다. 우리 부모 세대는 저축열이 높기 때문에 어떻게든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대학 노트에 볼펜으로 갈겨 쓴 사업계획서로 부친에게서 600만엥을 빌렸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벤처기업이나 벤처기업 열풍에 열광하는 것은 재능과 의욕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자신의 회사를 만들 수 있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다보면 그 결과물로서 큰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말에 온 나라가 벤처 열풍에 휩싸였던 한국의 예를 보면 결국 벤처기업을 만들고 어느 정도 사업을 진행한 사람의 대부분은 부모가 부자거나 유력자였다. 기업이란 아이디어나 패기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벤처 기업도 회사다. 회사 설립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초기 자금이다. 벤처 열풍은 그 초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인 것이다. 20대의 젊은이가 이런 허들을 통과했다면 열에 아홉은, 아니 백에 99는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런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천하의 빌 게이츠도 창업 자금은 부친에게서 원조를 받았다. 그 외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이의 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운에 대해 자랑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600만엥이라는 거금을 부모로부터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게다가 부모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양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흔히 벤처는 패기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내 자신은 나를 이해해주고 원조를 해 줄 수 있는 재력을 갖춘 부모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그 점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그렇지 못한 젊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어야 할 것이다. 혼네(속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다테마에(겉치레)는 이런 식의 말을 했어야 했다. 수많은 젊은 사람들의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는 호리에 씨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경솔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호리에 씨의 난폭한 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저서에서 “창업 멤버에게 과도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회사가 궤도에 올라 성장하기 시작하면 창업 멤버의 능력은 서서히 회사의 척도에 맞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창업 시에 참여한 스탭에 대해서는 되도록 드라이하고 비즈니스라이크 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정이 들면 회사가 성장해 필요 없게 되었을 때 목을 자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새로운 생각도 발견도 아니다. 회사를 만들고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뿐이지 공공의 장에서 적나라하게 말하지 않는 말이다. 품위의 문제도 있지만, 현재 같이 일을 하고 있는 부하 직원의 사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리에 씨처럼 창업 멤버는 성장하기 시작하면 불필요한 존재가 되고, 30명 규모였을 때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100명 규모가 되면 그 능력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을 자신의 저서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과연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호리에 씨의 저서는 온통 다른 사람이나 회사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부하직원이었던 사람은 물론 투자를 해주었던 벤처캐피탈, 동경마자스에 상장할 때의 주간사회사였던 증권회사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비즈니스를 통해 만났던 사람과 회사에 대한 비난 투성이다. 핵심 역량 이외의 것은 모두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 주류로 자리잡고 기업 환경에서 관계자 모두를 비난하는 사람과 비즈니스를 같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잇을까 의문이다.
그간 한국의 매스컴을 통해 막연하게 이미지를 그려왔던 ‘재기와 패기로 가득 찬 젊은 벤처 기업가 호리에 타카후미’의 모습은 그의 저서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돈이 모든 것이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탐욕스러운 기업가였다. 호리에 타카후미 씨에게 ‘마츠시카 코노스케’나 ‘야부키 OOO(소니 창업자)’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그 동안의 언행으로 미루어보건데 본인 스스로도 그런 의지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호리에 씨는 자신에 대해 ‘일본 재계 리더의 세대교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그는 빌 게이츠 같이 새로운 시대를 연 기업인, 세계를 움직이는 거물 기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최소한 일본 IT업계와 벤처업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 역시 그의 저서를 통해 보건데 기대하기 힘든 일로 보인다. 그는 입만 열면 인터넷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창업의 동기도 “인터넷의 매력에 푹 빠져,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한다. 올해의 전망에 대해서도 “2005년은 인터넷 미디어가 기존의 미디어를 능가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저서나 인터뷰, 그 어디에서도 그의 ‘인터넷관’이나 ‘인터넷 기업관’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인터넷은 무엇인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런 가운데 인터넷 기업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어떤 철학이나 신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은 아직 미지의 황야이고 따라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과연 거대 기업이 철학이나 비전 없이 운영될 수 있을 것인가. 일본방송의 직원들이 호리에 씨의 인수에 대해 “그 어떤 비전도 들을 수 없었다”며 맹렬히 반발 것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이미 인터넷 열풍을 한 번 겪었다. 명확한 비전과 인터넷에 대한 철학이 없이 큰돈을 만져보고 사라져간 벤처기업인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호리에 씨의 저서를 보면 볼수록,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골드뱅크라는 회사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1999년 (주)골드뱅크가 한국의 인터넷을 호령했다
“인터넷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는 양상에서 금융 엔터테인먼트 컨설팅 의료 등 무형 서비스로 확대될 것이다. 소비자는 보다 편리하고 신속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 또는 이용하게 될 것이며 기업에서는 투명한 거래와 운영비 인건비 등의 비용을 크게 절감하게 될 것이다. 바쁜 현대인들은 시간을 쪼개어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가는 것보다는 직장 또는 가정 등 앉은자리에서 즉시 구매가 가능한 인터넷 쇼핑이나 서비스를 더욱 선호하게 될 것이다”
1999년 5월 18일, 당시 나이 30에 불과했던 (주)골드뱅크의 김진호 대표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 중 일부이다. (주)골드뱅크는 인터넷 광고를 주력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1998년 10월 주당 8000원에 코스닥에 등록한 뒤, 1년도 되지 않은 1999년 무려 60배 이상 뛰어오르며 주가총액이 무려 4000억원에 달했던 대표적인 한국의 인터넷 벤처 기업이었다.
1999년은 한국의 인터넷 벤처의 황금시대였다. (주)골드뱅크를 비롯하여, (주)새롬기술, (주)다음커뮤케이션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벤처기업들의 주가총액은 삼성, LG, SK 등에 필적할 정도로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이들 벤처기업의 사장들은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들의 젊음과 패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특히 한국은 1997년 IMF 금융위기를 겪은 터라, 젊은 벤처기업인이야말로 한국 경제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구세주라 칭송을 받았고, 잘못된 재벌가의 악습을 넘어 새로운 부의 패러다임을 형성해줄 것을 기대하였다.
그런 기대를 걸 수 있는 기반은 역시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였다. 대한민국에는 고속인터넷망이 깔려있는 이른바 PC방을 전국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제는 일반 가정집에도 동영상을 마음대로 다운받아볼 수 있을 정도의 인터넷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이 TV나 신문과 다른 또 다른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면, 이를 이용해서 다양한 사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충분히 걸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주)골드뱅크의 김진호 사장은 향후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사고, 금융거래를 하며,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주)골드뱅크의 주식을 사는 사람들 역시, 이런 예측을 인정하여, (주)골드뱅크가 하는 모든 사업이 성공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
(주)골드뱅크의 사업 아이템은 간단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여, 인터넷 광고를 보는 회원들에게 돈을 주어, 100만명의 회원을 끌어 모았다. 이를 기반으로 (주)골드뱅크는 600억원대의 펀드를 조성했고, 골드신용금고를 비롯, 골드투어, GB캐피탈, 디지토, 텐, 엔써커뮤니티, 온네트, 이지오스, 에이치엠티 등 금융, 여행, 엔터테인먼트를 비롯 20여개의 계열사를 인수했다. 이들의 사업논리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 기업을 인수하여 다시 자본을 끌어들이는 사업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벤처기업인들 역시 (주)골드뱅크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m&a에 몰두하는 벤처기업은 진정한 벤처가 아니다
벤처열풍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오기 시작한 2000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벤처기업인인 (주)안철수바이러스의 안철수 대표는 “특별한 기술과 수익모델도 없이 무분별하게 자본을 끌어들이는 기업은 무너질 것이다”라며 사이비 벤처기업인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또한 한국 최대의 포털 사이트 다음을 운영하는 (주)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대표 역시 “기술력 없는 벤처는 벤처가 아니라 사실 상 벤처를 빙자한 캐피털 회사일 뿐”이라며 (주)골드뱅크의 사업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주)골드뱅크는 남의 기업만 인수하는데 골몰했을 뿐 사실 상 뚜렷한 수익모델을 만드는데 실패했다.
(주)골드뱅크가 수많은 기업체들을 인수하려다보니 필연적으로 외국계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국계 릴츠펀드는 (주)골드뱅크의 주식 19%를 인수하여 적대적 m&a를 시도하여, (주)골드뱅크의 경영권 분쟁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주)골드뱅크는 서서히 흔들리며 결국 김진호 대표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특히 그는 훗날 횡령혐의 등으로 법적 책임에 휘말리며 재기에도 실패하며 씁쓸히 물러나고 말았다.
(주)골드뱅크의 영광과 좌절은 1999년부터 시작된 한국 인터넷 벤처의 빛과 그림자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재벌기업들이 경제를 장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업을 자식들에게 승계하며, 부의 대물림으로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다. 반면 벤처기업인들은 아이디어와 승부근성으로 새로운 사업영역인 인터넷에 도전하며,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주)골드뱅크를 비롯한 일부 벤처기업들은 아무런 기술력도 없이 오직 언론플레이에 치중하며, 자금을 모아서 기업을 사냥하는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계 m&a 펀드를 끌어들이기도 하고, 주가조작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몇몇 벤처인들의 부정은 전체 벤처업계에 악영향을 주어 대한민국에서는 2005년 현재까지도 인터넷 벤처에 대하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은 공짜로 황금을 구할 수 있는 엘도라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권력과 돈을 지향하는 인터넷은 진짜 인터넷이 아니다
인터넷 벤처붐이 일었을 때, 인터넷과 벤처는 한국경제의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었다. 아무리 형편없는 기업이라도 인터넷을 상징하는 '.com'만 붙었으면, 새로운 기술력을 갖춘 우량기업으로 대우받았다. 그러다보니 건강식품 판매회사조차 ‘.com' 붙이고 다니는 웃지 못할 일도 허다하게 벌어졌다.
또한, 인터넷과 벤처는 기존의 전통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1999년 한국에서는 “10년 후면 텔레비전이 사라진다‘, ’10년 후면 종이신문이 사라진다‘, ’10년 후면 백화점이 사라진다‘라는 말들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인터넷이 대체하니 기존의 체제는 붕괴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인터넷 벤처기업과 기존의 대기업과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특히 당시 김대중 정부가 재벌개혁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당시 한국의 유력신문 중앙일보는 “인터넷 벤처가 재벌을 해체시켜, 새로운 경제권력으로 자리잡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연출한 측면이 있다”보도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뒤인 2005년 현재, 인터넷 벤처의 상당수를 기존 대기업이 인수하기도 했고, 기존 대기업과 윈윈전략을 쓰지 않는 인터넷 기업은 대부분 몰락했다.
인터넷으로 말하자면, 아직 한국에서는 텔레비전이 그대로 있고, 전화가 그대로 있고, 백화점이 그대로 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TV를 보고, 전화통화를 하고 물건을 사는 젊은 층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넷 벤처인들이 간과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이 인터넷을 통해 하겠다는 대부분의 것들은 생활습관이나 문화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멀쩡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전화통화를 하고,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던 사람들이 단지 조금 편리하다는 이유로 모두가 다 기존의 습관을 버릴 필요는 없었다.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은 인터넷으로 하는 것이고 텔레비전과 백화점에 익숙한 사람은 그대로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올드미디어 전체가 몰락한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없던 일이다. TV가 발명이 되어도, 라디오와 책이 그대로 존재하듯이 말이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에서는 인터넷으로 세상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권력지향적인 발상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속인터넷망 회사인 두르넷은 자사의 광고를 통해 “인터넷 때문에 학교가 사라진다면 그건 진짜 인터넷이 아닙니다. 인터넷 때문에 학교가 더 발전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진짜 인터넷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광고는 그간 인터넷을 권력과 자본 추구의 수단으로 삼은 기업인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던 많은 장년층에 호감을 얻었다. 그 뒤 한국에서는 “인터넷 때문에 무엇이 사라진다”는 등의 언론플레이를 하는 기업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인터넷의 공익적 기능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세대간 갈등을 조장하는 인터넷은 가짜다
인터넷은 애초에 미국에서 학술적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학자들끼리 연구자료를 서로 교환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는 대중화되었다. 그 속도는 가히 세계 최고였다. 인터넷이 한국에서 급속도로 보급된 데에는, 정보통신부의 고속인터넷망 구축, 그리고 자발적으로 인터넷에 자신들의 자료를 무료로 올리는 수많은 네티즌의 힘이 컸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최초의 개발 목적에 맞게 공익적인 활동을 한 것이다. 그러다 1999년도 한국의 인터넷은 한탕주의식 벤처기업인들로 인해 상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인터넷을 투기화시켰고, 인터넷에 자본과 권력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현재 그들 대부분은 벌써 망했다. 어떻게 보면 심판을 받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터넷 자체가 망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젊은층은 고속인터넷망을 이용하여, 수십메가짜리 동영상을 다운받을 수 있다. 그들은 전국의 모든 공기관과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서류작업을 하고, 강의를 듣기도 한다. 또한 대부분의 잡지를 인터넷을 이용하여 받아보고, 언제라도 음악서비스 페이지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세상에서 팔리는 모든 물건도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 기업들이 망해가는 데도 이상하게 한국의 젊은층은 보다 더 인터넷에 가까이 다가가, 친숙해지는 것이다. 또한 이제 조금씩 조금씩 한국의 장년층도 인터넷에 익숙해지고 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 올드미디어도 인터넷과 결합하여,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고 있다. 벤처열풍이 몰아치고 간 뒤, 한국에서는 이제 조용한 인터넷, 공익적 인터넷 모델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공익적인 인터넷을 활용해 사업을 한다고 한다면, 회사의 이익을 추구할지라도, 공익이라는 측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올드미디어나 기존의 기업들과의 상생과 화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자본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본을 축적한 측의 협조없이는 사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들의 자료를 올려주는 수많은 네티즌들을 생각한다면, 설사 인터넷으로 사업에 성공했다 한들, 그것이 그 기업인 한 명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보면, 2005년 일본에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호리에 다까후미의 예는 의미심장하다.
호리에는 (주)골드뱅크를 벤치마킹했다
(주)골드뱅크의 김진호 대표는 대표이사에서 해임된 뒤 엠스타닷컴이라는 인터넷기업을 일본에 설립했다. 그는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인터넷벤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현재 온네트나 커머스21 등의 벤처기업들이 일본 시장 진입에 성공, 인정받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더욱 활발한 진출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들어 저에게도 초기에 제가 스스로 찾아다녀야 했던 기업들이 제발로 찾아오거나 제게 제휴선을 대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증거겠지요.“
또한 그는 일본의 벤처계가 주류인 상사계와 소프트뱅크계, 비주류인 히까리계와 시부야계로 나누어지며, 시부야계의 호리에 다까후미가 자신을 벤치마킹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현재 LIVEDOOR.COM 이라는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호리에의 사업방향은 김진호 대표가 운영하던 (주)골드뱅크와 너무나 유사하다.
일단 그 둘 모두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아니라, 말과 글을 주로 하는 정치학과 문학전공자라는 점, 인터넷과 새로운 기업관에 대해 언론플레이를 통해 끊임없이 발언하는 점, 외부 펀드를 끌어들여 수많은 기업을 m&a 하고 있다는 점, 미국계 펀드와 연관이 되어있다는 점 등등, 그들은 서로 닮은 꼴이다.
물론 그렇다고 호리에가 김진호처럼 반드시 실패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김진호 대표의 성공과 실패를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한 철학부족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호리에가 말하는 인터넷은 조금 위험해 보인다. 인터넷은 특정 개인이 돈벌이로 활용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는 이미 5년 전, 그런 사람들은 모두 실패했다. 돈을 끌어들여 남의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자신만의 기술과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이웃기업이나 네티즌들과 공유하는 기업인들만이 진정한 인터넷 벤처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인터넷이 바로 그렇게 이용될 때,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는 인터넷이 될 수 있고, 여타의 올드미디어들과 평화공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보다 더 성숙한 인터넷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일본의 대표적인 벤처기업인이 실패한 사업모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일은 참으로 한심해 보인다.
호리에 씨의 말대로 기업은 대학 서클도 자선사업도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때문에 평생 쌓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거나, 사회친화적인 기업을 일구면서 사리사욕을 버린 ‘미츠시타 코노스케’가 존경을 받는 것이다.
호리에 씨가 이런 길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호리에 씨에게는 12만명의 주주들에 대한 책임은 남아있다. 주식 회사의 CEO는 귀족사회의 ‘집사’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남의 돈을 맡아 제대로 굴려야 하는 책임이다. 호리에 씨에게 모인 거액의 자본은 호리에 씨에게 제대로 된 ‘집사’의 역할 수행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대한민국 부자만들기 쏭군님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라이브도어닷컴 호리에 사장
변희재 기자
라이브도어닷컴 호리에 사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체포되었다. 일본은 그를 자민당 후보로 내세운 고이즈미 총리 등을 비롯하여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호리에야말로 노쇄한 일본 경제를 구해줄 새로운 젊은피라 각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예고되어있었다. 일본보다 더 빨리 성장한 한국의 벤처기업의 경우 2000년 거품이 빠지며 수많은 벤처기업가들이 크고 작은 죄로 처벌받았다. 호리에는 이 중 벤처거품을 주도했던 (주)골드뱅크의 김진호 사장을 자신의 발전모델로 삼았다.
과연 호리에는 자신의 스승인 김진호 사장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것인가?
1년 전 일본 주간현대에 기고한 <호리에는 성공할 수 없다>라는 글을 소개한다.
호리에의 인터넷은 무엇인가?
요즘 한국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 파문으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연일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검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아시다시피 ‘후쇼사’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후소샤는 후지산케이 그룹에 속한다.
최근 일본방송의 주식 취득을 통해 후지산케이 그룹 전체를 인수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호리에 타카후미 씨. 그의 말 중에 ‘돈도 안 되는 그런 일은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한국인으로서는 가슴이 후련해지고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은 말이다. 호리에 씨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이런 계기로 시작되었다.
호리에 씨의 저서나 신문과 잡지 등에 인터뷰한 내용은 읽으면 읽을수록 “과연 박수를 보내주어도 될 사람인지”라는 의문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의 저서는 온통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말 투성이다.
그의 저서에 의하면 1996년 ‘라이브도어’의 옛이름인 ‘온더엣지’의 설립 자본금은 600만엥이었다고 한다. 당시 23살의 대학생이 어떻게 600만엥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그는 “600만엔이라는 돈이 큰돈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보면 분명히 빌려줄 사람이 있다. (중략) 부모 형제에게 부탁하면 된다. 우리 부모 세대는 저축열이 높기 때문에 어떻게든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대학 노트에 볼펜으로 갈겨 쓴 사업계획서로 부친에게서 600만엥을 빌렸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벤처기업이나 벤처기업 열풍에 열광하는 것은 재능과 의욕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자신의 회사를 만들 수 있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다보면 그 결과물로서 큰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말에 온 나라가 벤처 열풍에 휩싸였던 한국의 예를 보면 결국 벤처기업을 만들고 어느 정도 사업을 진행한 사람의 대부분은 부모가 부자거나 유력자였다. 기업이란 아이디어나 패기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벤처 기업도 회사다. 회사 설립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초기 자금이다. 벤처 열풍은 그 초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인 것이다. 20대의 젊은이가 이런 허들을 통과했다면 열에 아홉은, 아니 백에 99는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런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천하의 빌 게이츠도 창업 자금은 부친에게서 원조를 받았다. 그 외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이의 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운에 대해 자랑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600만엥이라는 거금을 부모로부터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게다가 부모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양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흔히 벤처는 패기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내 자신은 나를 이해해주고 원조를 해 줄 수 있는 재력을 갖춘 부모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그 점에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그렇지 못한 젊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어야 할 것이다. 혼네(속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다테마에(겉치레)는 이런 식의 말을 했어야 했다. 수많은 젊은 사람들의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는 호리에 씨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경솔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호리에 씨의 난폭한 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저서에서 “창업 멤버에게 과도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회사가 궤도에 올라 성장하기 시작하면 창업 멤버의 능력은 서서히 회사의 척도에 맞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창업 시에 참여한 스탭에 대해서는 되도록 드라이하고 비즈니스라이크 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정이 들면 회사가 성장해 필요 없게 되었을 때 목을 자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새로운 생각도 발견도 아니다. 회사를 만들고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뿐이지 공공의 장에서 적나라하게 말하지 않는 말이다. 품위의 문제도 있지만, 현재 같이 일을 하고 있는 부하 직원의 사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리에 씨처럼 창업 멤버는 성장하기 시작하면 불필요한 존재가 되고, 30명 규모였을 때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100명 규모가 되면 그 능력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을 자신의 저서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과연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호리에 씨의 저서는 온통 다른 사람이나 회사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부하직원이었던 사람은 물론 투자를 해주었던 벤처캐피탈, 동경마자스에 상장할 때의 주간사회사였던 증권회사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비즈니스를 통해 만났던 사람과 회사에 대한 비난 투성이다. 핵심 역량 이외의 것은 모두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 주류로 자리잡고 기업 환경에서 관계자 모두를 비난하는 사람과 비즈니스를 같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잇을까 의문이다.
그간 한국의 매스컴을 통해 막연하게 이미지를 그려왔던 ‘재기와 패기로 가득 찬 젊은 벤처 기업가 호리에 타카후미’의 모습은 그의 저서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돈이 모든 것이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탐욕스러운 기업가였다. 호리에 타카후미 씨에게 ‘마츠시카 코노스케’나 ‘야부키 OOO(소니 창업자)’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그 동안의 언행으로 미루어보건데 본인 스스로도 그런 의지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호리에 씨는 자신에 대해 ‘일본 재계 리더의 세대교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그는 빌 게이츠 같이 새로운 시대를 연 기업인, 세계를 움직이는 거물 기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최소한 일본 IT업계와 벤처업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 역시 그의 저서를 통해 보건데 기대하기 힘든 일로 보인다. 그는 입만 열면 인터넷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창업의 동기도 “인터넷의 매력에 푹 빠져,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한다. 올해의 전망에 대해서도 “2005년은 인터넷 미디어가 기존의 미디어를 능가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저서나 인터뷰, 그 어디에서도 그의 ‘인터넷관’이나 ‘인터넷 기업관’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인터넷은 무엇인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런 가운데 인터넷 기업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어떤 철학이나 신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은 아직 미지의 황야이고 따라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과연 거대 기업이 철학이나 비전 없이 운영될 수 있을 것인가. 일본방송의 직원들이 호리에 씨의 인수에 대해 “그 어떤 비전도 들을 수 없었다”며 맹렬히 반발 것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이미 인터넷 열풍을 한 번 겪었다. 명확한 비전과 인터넷에 대한 철학이 없이 큰돈을 만져보고 사라져간 벤처기업인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호리에 씨의 저서를 보면 볼수록,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골드뱅크라는 회사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1999년 (주)골드뱅크가 한국의 인터넷을 호령했다
“인터넷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는 양상에서 금융 엔터테인먼트 컨설팅 의료 등 무형 서비스로 확대될 것이다. 소비자는 보다 편리하고 신속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 또는 이용하게 될 것이며 기업에서는 투명한 거래와 운영비 인건비 등의 비용을 크게 절감하게 될 것이다. 바쁜 현대인들은 시간을 쪼개어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가는 것보다는 직장 또는 가정 등 앉은자리에서 즉시 구매가 가능한 인터넷 쇼핑이나 서비스를 더욱 선호하게 될 것이다”
1999년 5월 18일, 당시 나이 30에 불과했던 (주)골드뱅크의 김진호 대표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 중 일부이다. (주)골드뱅크는 인터넷 광고를 주력 사업 아이템으로 삼아 1998년 10월 주당 8000원에 코스닥에 등록한 뒤, 1년도 되지 않은 1999년 무려 60배 이상 뛰어오르며 주가총액이 무려 4000억원에 달했던 대표적인 한국의 인터넷 벤처 기업이었다.
1999년은 한국의 인터넷 벤처의 황금시대였다. (주)골드뱅크를 비롯하여, (주)새롬기술, (주)다음커뮤케이션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벤처기업들의 주가총액은 삼성, LG, SK 등에 필적할 정도로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이들 벤처기업의 사장들은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들의 젊음과 패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특히 한국은 1997년 IMF 금융위기를 겪은 터라, 젊은 벤처기업인이야말로 한국 경제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구세주라 칭송을 받았고, 잘못된 재벌가의 악습을 넘어 새로운 부의 패러다임을 형성해줄 것을 기대하였다.
그런 기대를 걸 수 있는 기반은 역시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였다. 대한민국에는 고속인터넷망이 깔려있는 이른바 PC방을 전국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제는 일반 가정집에도 동영상을 마음대로 다운받아볼 수 있을 정도의 인터넷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이 TV나 신문과 다른 또 다른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면, 이를 이용해서 다양한 사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충분히 걸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주)골드뱅크의 김진호 사장은 향후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사고, 금융거래를 하며,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주)골드뱅크의 주식을 사는 사람들 역시, 이런 예측을 인정하여, (주)골드뱅크가 하는 모든 사업이 성공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
(주)골드뱅크의 사업 아이템은 간단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여, 인터넷 광고를 보는 회원들에게 돈을 주어, 100만명의 회원을 끌어 모았다. 이를 기반으로 (주)골드뱅크는 600억원대의 펀드를 조성했고, 골드신용금고를 비롯, 골드투어, GB캐피탈, 디지토, 텐, 엔써커뮤니티, 온네트, 이지오스, 에이치엠티 등 금융, 여행, 엔터테인먼트를 비롯 20여개의 계열사를 인수했다. 이들의 사업논리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 기업을 인수하여 다시 자본을 끌어들이는 사업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벤처기업인들 역시 (주)골드뱅크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m&a에 몰두하는 벤처기업은 진정한 벤처가 아니다
벤처열풍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오기 시작한 2000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벤처기업인인 (주)안철수바이러스의 안철수 대표는 “특별한 기술과 수익모델도 없이 무분별하게 자본을 끌어들이는 기업은 무너질 것이다”라며 사이비 벤처기업인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또한 한국 최대의 포털 사이트 다음을 운영하는 (주)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대표 역시 “기술력 없는 벤처는 벤처가 아니라 사실 상 벤처를 빙자한 캐피털 회사일 뿐”이라며 (주)골드뱅크의 사업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주)골드뱅크는 남의 기업만 인수하는데 골몰했을 뿐 사실 상 뚜렷한 수익모델을 만드는데 실패했다.
(주)골드뱅크가 수많은 기업체들을 인수하려다보니 필연적으로 외국계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국계 릴츠펀드는 (주)골드뱅크의 주식 19%를 인수하여 적대적 m&a를 시도하여, (주)골드뱅크의 경영권 분쟁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주)골드뱅크는 서서히 흔들리며 결국 김진호 대표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특히 그는 훗날 횡령혐의 등으로 법적 책임에 휘말리며 재기에도 실패하며 씁쓸히 물러나고 말았다.
(주)골드뱅크의 영광과 좌절은 1999년부터 시작된 한국 인터넷 벤처의 빛과 그림자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재벌기업들이 경제를 장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업을 자식들에게 승계하며, 부의 대물림으로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다. 반면 벤처기업인들은 아이디어와 승부근성으로 새로운 사업영역인 인터넷에 도전하며,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주)골드뱅크를 비롯한 일부 벤처기업들은 아무런 기술력도 없이 오직 언론플레이에 치중하며, 자금을 모아서 기업을 사냥하는 구태의연한 경영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계 m&a 펀드를 끌어들이기도 하고, 주가조작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몇몇 벤처인들의 부정은 전체 벤처업계에 악영향을 주어 대한민국에서는 2005년 현재까지도 인터넷 벤처에 대하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은 공짜로 황금을 구할 수 있는 엘도라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권력과 돈을 지향하는 인터넷은 진짜 인터넷이 아니다
인터넷 벤처붐이 일었을 때, 인터넷과 벤처는 한국경제의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었다. 아무리 형편없는 기업이라도 인터넷을 상징하는 '.com'만 붙었으면, 새로운 기술력을 갖춘 우량기업으로 대우받았다. 그러다보니 건강식품 판매회사조차 ‘.com' 붙이고 다니는 웃지 못할 일도 허다하게 벌어졌다.
또한, 인터넷과 벤처는 기존의 전통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1999년 한국에서는 “10년 후면 텔레비전이 사라진다‘, ’10년 후면 종이신문이 사라진다‘, ’10년 후면 백화점이 사라진다‘라는 말들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인터넷이 대체하니 기존의 체제는 붕괴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인터넷 벤처기업과 기존의 대기업과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특히 당시 김대중 정부가 재벌개혁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당시 한국의 유력신문 중앙일보는 “인터넷 벤처가 재벌을 해체시켜, 새로운 경제권력으로 자리잡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연출한 측면이 있다”보도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뒤인 2005년 현재, 인터넷 벤처의 상당수를 기존 대기업이 인수하기도 했고, 기존 대기업과 윈윈전략을 쓰지 않는 인터넷 기업은 대부분 몰락했다.
인터넷으로 말하자면, 아직 한국에서는 텔레비전이 그대로 있고, 전화가 그대로 있고, 백화점이 그대로 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TV를 보고, 전화통화를 하고 물건을 사는 젊은 층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넷 벤처인들이 간과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이 인터넷을 통해 하겠다는 대부분의 것들은 생활습관이나 문화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멀쩡하게 텔레비전을 보고, 전화통화를 하고,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던 사람들이 단지 조금 편리하다는 이유로 모두가 다 기존의 습관을 버릴 필요는 없었다.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은 인터넷으로 하는 것이고 텔레비전과 백화점에 익숙한 사람은 그대로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올드미디어 전체가 몰락한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없던 일이다. TV가 발명이 되어도, 라디오와 책이 그대로 존재하듯이 말이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에서는 인터넷으로 세상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권력지향적인 발상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속인터넷망 회사인 두르넷은 자사의 광고를 통해 “인터넷 때문에 학교가 사라진다면 그건 진짜 인터넷이 아닙니다. 인터넷 때문에 학교가 더 발전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진짜 인터넷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광고는 그간 인터넷을 권력과 자본 추구의 수단으로 삼은 기업인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던 많은 장년층에 호감을 얻었다. 그 뒤 한국에서는 “인터넷 때문에 무엇이 사라진다”는 등의 언론플레이를 하는 기업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인터넷의 공익적 기능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세대간 갈등을 조장하는 인터넷은 가짜다
인터넷은 애초에 미국에서 학술적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학자들끼리 연구자료를 서로 교환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는 대중화되었다. 그 속도는 가히 세계 최고였다. 인터넷이 한국에서 급속도로 보급된 데에는, 정보통신부의 고속인터넷망 구축, 그리고 자발적으로 인터넷에 자신들의 자료를 무료로 올리는 수많은 네티즌의 힘이 컸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최초의 개발 목적에 맞게 공익적인 활동을 한 것이다. 그러다 1999년도 한국의 인터넷은 한탕주의식 벤처기업인들로 인해 상업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인터넷을 투기화시켰고, 인터넷에 자본과 권력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현재 그들 대부분은 벌써 망했다. 어떻게 보면 심판을 받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터넷 자체가 망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젊은층은 고속인터넷망을 이용하여, 수십메가짜리 동영상을 다운받을 수 있다. 그들은 전국의 모든 공기관과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서류작업을 하고, 강의를 듣기도 한다. 또한 대부분의 잡지를 인터넷을 이용하여 받아보고, 언제라도 음악서비스 페이지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세상에서 팔리는 모든 물건도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 기업들이 망해가는 데도 이상하게 한국의 젊은층은 보다 더 인터넷에 가까이 다가가, 친숙해지는 것이다. 또한 이제 조금씩 조금씩 한국의 장년층도 인터넷에 익숙해지고 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 올드미디어도 인터넷과 결합하여,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고 있다. 벤처열풍이 몰아치고 간 뒤, 한국에서는 이제 조용한 인터넷, 공익적 인터넷 모델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공익적인 인터넷을 활용해 사업을 한다고 한다면, 회사의 이익을 추구할지라도, 공익이라는 측면을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올드미디어나 기존의 기업들과의 상생과 화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자본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본을 축적한 측의 협조없이는 사업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들의 자료를 올려주는 수많은 네티즌들을 생각한다면, 설사 인터넷으로 사업에 성공했다 한들, 그것이 그 기업인 한 명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보면, 2005년 일본에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호리에 다까후미의 예는 의미심장하다.
호리에는 (주)골드뱅크를 벤치마킹했다
(주)골드뱅크의 김진호 대표는 대표이사에서 해임된 뒤 엠스타닷컴이라는 인터넷기업을 일본에 설립했다. 그는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인터넷벤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현재 온네트나 커머스21 등의 벤처기업들이 일본 시장 진입에 성공, 인정받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더욱 활발한 진출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들어 저에게도 초기에 제가 스스로 찾아다녀야 했던 기업들이 제발로 찾아오거나 제게 제휴선을 대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증거겠지요.“
또한 그는 일본의 벤처계가 주류인 상사계와 소프트뱅크계, 비주류인 히까리계와 시부야계로 나누어지며, 시부야계의 호리에 다까후미가 자신을 벤치마킹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현재 LIVEDOOR.COM 이라는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호리에의 사업방향은 김진호 대표가 운영하던 (주)골드뱅크와 너무나 유사하다.
일단 그 둘 모두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아니라, 말과 글을 주로 하는 정치학과 문학전공자라는 점, 인터넷과 새로운 기업관에 대해 언론플레이를 통해 끊임없이 발언하는 점, 외부 펀드를 끌어들여 수많은 기업을 m&a 하고 있다는 점, 미국계 펀드와 연관이 되어있다는 점 등등, 그들은 서로 닮은 꼴이다.
물론 그렇다고 호리에가 김진호처럼 반드시 실패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김진호 대표의 성공과 실패를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한 철학부족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호리에가 말하는 인터넷은 조금 위험해 보인다. 인터넷은 특정 개인이 돈벌이로 활용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는 이미 5년 전, 그런 사람들은 모두 실패했다. 돈을 끌어들여 남의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자신만의 기술과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이웃기업이나 네티즌들과 공유하는 기업인들만이 진정한 인터넷 벤처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인터넷이 바로 그렇게 이용될 때,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는 인터넷이 될 수 있고, 여타의 올드미디어들과 평화공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보다 더 성숙한 인터넷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일본의 대표적인 벤처기업인이 실패한 사업모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일은 참으로 한심해 보인다.
호리에 씨의 말대로 기업은 대학 서클도 자선사업도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때문에 평생 쌓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거나, 사회친화적인 기업을 일구면서 사리사욕을 버린 ‘미츠시타 코노스케’가 존경을 받는 것이다.
호리에 씨가 이런 길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호리에 씨에게는 12만명의 주주들에 대한 책임은 남아있다. 주식 회사의 CEO는 귀족사회의 ‘집사’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남의 돈을 맡아 제대로 굴려야 하는 책임이다. 호리에 씨에게 모인 거액의 자본은 호리에 씨에게 제대로 된 ‘집사’의 역할 수행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대한민국 부자만들기 쏭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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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쉽게 생각하기는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즈니스를 위한 회사,기업은 사업에 있어서 수익과 실적으로 시장에 신뢰를 받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돈을 위해 회사,기업이 어떻게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떄로는
도덕적으로 또는 법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기에 꾸준하게 이에 대해 생각을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임에 동감합니다. 어쩌면 본 글의 예시에 나온 이는 많은 사람들 중에, 굳이 말하자면, '재수 없이 걸린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처음부터 옳고 정의로운 일을 지향해 나가는 마음을 꾸준히 쌓아간다면 그런 위험들과 부딪힐 확률도 그만큼 적어지리라 믿습니다.
쿨!